91년 고등학교때 나의 집은 숨통이 조금 트이는듯했다. 분양권으로 얻은 아파트의 시세가 올라가며, 어머니가 자가용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차는 H자동차사의 찬란한 은빛 엑X이었다. 애칭 은마.
 은마는 고3때 야자(야간자율학습)로 피곤한 나를 위해 늦은 밤에도 데릴러 와줬고, 졸업을 한 이후에는 면허 시험에 붙게 해주려 공터에서 먼지를 휘날리며 낯선 핸들링을 감수해줬다. 아버지가 수업 중 쓰러졌을 때 고등학교로 달려가 병원으로 모셨던 앰블런스도 기꺼이 돼 주었다.
 세월이 지나 14살이 된 은마는 찬란한 은빛에서 구운 생선 빛깔 처럼 피부가 노화됐다. 그 동안 숱한 사고와 주행으로 인해 우리 식구는 그를 폐차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새로운 중고차(?)를 구입하기로 한것.

 2003년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은 폐차장으로 가는 뒷 모습이었다. 그 동안 우리 식구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 달려준 그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안하고 고마왔던 우리 가족의 첫 차 은마. 나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 모습을 지금도 계속 바라 보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사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기억을 위해 펜을 쓰고, 층을 오르기 위해 계단이 필요하다. 사무실엔 파티션이 있어야 하고, 여행을 가기 위해 트렁크를 챙긴다. 너무나 익숙한 이 사물들을 우리는 ‘쓸모의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사실 어떤 사람보다 많은 관계가 있을 사물이 있을텐데 말이다.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대상과 관계가 있을까? 인간은 늘 사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사물을 통해 존재의 다면성과 만나는 사유와 애착이 가능하다. 우리 가족의 은마가 사물과의 애착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줬듯 말이다.
 실은 2003년 구입한 두 번째 은마를 우리 가족은 다시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글쓴이. 벨칸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