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글쓰기'라고 하면은 문학적 글쓰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거나… 그래서 글쓰기를 어렵다거나 되게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작가들의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요.

허나 글쓰기 행위는 우리의 주변 가까운 곳에 산재해있습니다. 메일을 보낸다거나, 일기를 쓴다거나, SNS에 오늘의 기분을 남긴다거나 혹은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작성한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죠. ‘ㄴr는 가끔 눈물을 흘린ㄷr... 난 이런ㄴH가 참 ...싫ㄷr...’ 모 연예인의 유명한, 마치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갈래 같은 글 또한 글쓰기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안서를 작성하거나, 출장일지를 적거나, 특히 보고서를 쓰고 보고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글쓰기 작업 중 하나입니다.


 

직장에서 쓰는 많은 글의 독자는 상사입니다. 우리 ‘독자’의 수준은 높습니다. ‘나’에게 원하는 바도 많습니다. 역량이 없는데 나의 ‘독자’가 내 수준보다 높은 결과물을 기대하는 상황은 난감하기만 합니다. 실력을 키우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이러한 때에 상사와의 관계를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상사는 자신의 의중을 잘 읽는 사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자신이 해야 할 악역을 대신 맡아주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글을 잘 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상사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면 힘든 줄 모르고 주인의식을 갖게 됩니다. 상사와 나는 한배를 타게 되는 겁니다. 허나,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상사를 좋아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는 것. 본디 상사라는 위치는 악역을 맡아야 합니다. 지적하고 쪼는 것이 그들의 주요 임무이죠. 아아…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상사분들도 부하 직원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부하 직원을 믿어야 합니다. 부하는 상사가 자신을 신뢰하는지 불신하는지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상사가 믿는 만큼 움직입니다. 기대한 만큼 부응합니다. 기대해도 잘할까 말까인데 전혀 기대하지 않은 부하 직원이 일을 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가끔 반전 있는 부하 직원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믿고 맡겨야 합니다. 글 쓰는 일은 물건을 만드는 일과 달리 당사자의 의욕과 주도성이 주효하기 때문입니다. 부하 직원 역시 상사가 믿어주게끔 노력해야 합니다. 수시로 상사의 생각을 확인하고 나를 믿게 하는 방법을 업데이트해야합니다. 체크만이 살길입니다. 무조건 상사의 생각이 갑입니다. 갑 오브 갑. 맞춰주는 게 답입니다. 상사가 틀렸다고 하면 생각하지 말고 고쳐야 합니다. 이런 부하를 상사는 신뢰합니다. 그리고 신뢰가 형성되면 선순환이 일어나고 상승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런 관계에서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면 요즘 말로 그냥 ‘노답’인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기에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보고서를 쓰고 나도 상사와의 의견 차이는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이 문제로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이건 간단한 문제입니다. 갈등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린 공짜로 보고서를 써주는 게 아닙니다. 월급을 받습니다. (아, 물론 쥐꼬리만 한 급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파는 겁니다. 납품받을 고객에게 맞춰주는 게 맞습니다. 스트레스는 부당하게 짊어지는 짐은 아닙니다. 응당 감당해야 할 월급 값입니다. 자존심 상할 문제는 아닙니다. 보고서를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상사의 지적을 내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생각이 있고, 나름의 이유를 통해 옳음이 있습니다. 상사의 의견이 있고 내 의견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사가 설득되지 않거나 상사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상사의 의견을 따르면 됩니다. 누군가 바꿔야 한다면 내가 변해야 합니다. 그가 상사이기 때문에, 책임도 상사가 지기 때문에… 기승전상사!!


 

보고서로 지적받는 건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보고서를 쓰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웁니다. 상사의 옳거나 틀린 지적에서도 나의 실수 혹은 저 상사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촉박한 시간에서 보고서를 쓰는 경우에는 급히 업무 처리하는 법을 배웁니다. 가끔은 나에게 떨어지는 과중한 일을 소화하는 법도 알게 됩니다. (그래도 주 52시간 노동시간은 지킵시다!) 내 업무가 아닌 일을 하게 됐을 때는 다양한 일을 접할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내 역량으로는 버거운 보고서를 쓸 경우 역시 어려운 일에 도전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노오력’을 강요하는 세태가 좋은 건 아니지만 조직에 몸담고, 그 조직을 떠날 때면 실감하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그 자리에 영원히 있는 건 아닙니다. 반드시 자리를 떠나고 사람들과도 헤어집니다. 달콤하고도 씁쓸할지언정 헤어지고 떠나고 나면 그 모든 것은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이 됩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은 강원국 작가의 《강원국의 글쓰기》의 내용 중 일부를 각색하여 전해드린 것입니다. 

이 책에는 40여 가지의 글쓰기 노하우가 빼곡하게 적혀있습니다. 그중에는 직장에서 필요한 글쓰기 방법뿐 아니라 직장처세술까지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건 28년 간 대통령과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상사’를 모신 강원국 작가의 생생한 경험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한 인생 선배의 경험도 얻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