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든 인생에서든, 우리는 매일 더 용감해지고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는 주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과감하고 빠른 실행력을 갖춘 용감한 사람이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날아들지요. 매번 그런 사람으로 살고자 각오를 새롭게 다잡아보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회나 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결심을 미루는 ‘나’를 마주하면 괴롭고 실망스럽기도 하지요. KAIST 정재승 교수는 《열두 발자국》에서 이런 매일매일을 통과하는 우리들에게 기준이 되어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퍼스트 펭귄(The first penguin)’이라는 말을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혹독한 겨울을 남극 빙하의 한가운데서 보낸 펭귄들은 봄이 되면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빙하의 가장자리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빙하의 끝에 온 펭귄들은 바닷속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립니다. 바닷속에는 펭귄을 잡아먹으려는 물개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때 무리에서 맨 처음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부릅니다.

매우 도전적인 이 펭귄들은 물개가 없는 영역에서 마음껏 물고기를 잡아먹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고, 물개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매우 위험하지만 그만큼 얻게 되는 보상도 큰 리더이지요. 그러면 뒤를 이어 재빠른 추종자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그들은 좀 더 안전하고 보상은 좀 더 적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왜 과감한 퍼스트 펭귄이 잘 안 나올까요? 너무도 당연합니다.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은 항상 우리에게 ‘모험을 즐기고 과감하게 시도하는 퍼스트 펭귄이 돼라’고 종용하지만, 퍼스트 펭귄이야말로 무리에서 가장 위태로운 존재입니다.

미국에서는 왜 퍼스트 펭귄 같은 스타트업이 잘 나오는 걸까요? 그들은 왜 글로벌 무대를 바탕으로 그토록 위험한 ‘세계 최초의 시도’에 과감할 걸까요? 그들은 우리보다 본질적으로 창의적인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제일 먼저 뛰어들어 실패하는 경험이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됩니다. 스타트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해본 경험이 대기업에 취업한 경험 못지않게 좋은 경력으로 인정받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모두가 알고 있죠. 여러 번 실패해야 결국 성공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꾸준히 시도하되,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성급하게 진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퍼스트 펭귄이 되어야 하지만 성급하게 바로 뛰어들지 말라는 겁니다. 매우 역설적이죠? 남이 가지 않은 곳으로 뛰어내리더라도 그 앞에서는 신중하게 아래를 잘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위험을 관리하는 태도입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일을 잘 미룬다’는 거라고 합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훨씬 부지런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기민하게 실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 가운데 일을 미루고, 그래서 나름 이런저런 상황을 잘 생각해보고 바로 실천하지 않았기에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최근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선두주자가 되어 생각날 때마다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실패 확률 또한 상당히 높다는 겁니다. 아이디어는 처음 떠올랐다고 해서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계속 수정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내 아이디어의 문제점에 대한 피드백을 쉴 새 없이 받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도 아이디어로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고, 다른 모드로 다른 작업을 하다가 또 와서 생각하고.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로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할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다시 말해 조급하게 닦달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내 아이디어를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창의적 성과물이 나오고 사회적 성취를 이룰 확률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