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은 부지런할 것이다, 머리가 좋을 것이다, 합리적일 것이다 등 우리는 붕어빵 같은 틀로 사람을 짐작하고 넘겨짚습니다. 이러한 집단적 지레짐작이 바로 집단 사고입니다. 모름지기 여자란, 모름지기 장남이란, 모름지기 성직자란, 모름지기 학생이란……. 우리 사회의 이런 집단 사고들은 자연의 곡선을 직선으로 밀어버리는 포크레인 같은 심리적 폭력입니다.

집단 사고는 유일성이나 개별성 같은 한 존재의 심리적 S라인을 두루뭉술하게 지워버립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섬세한 라인이 생긴 몸매를 부대 자루 같은 펑퍼짐한 원사이즈 옷을 입혀 아름다운 몸의 곡선이 드러나지 못하게 꽁꽁 묶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집단 사고로 ‘그’라는 한 존재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사람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이미 내려졌으므로 그가 어떤 개별성을 가진 존재인지에 집중하는 일에는 당연히 소홀해집니다.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집단 사고에 휘둘리면 어떤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못합니다.


 


서로가 마음이나 느낌을 주고받는 존재의 차원에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면 배우자나 절친 사이라도 실제로 나는 그를, 그는 나를 만난 적이 없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책 <당신이 옳다>에서 외형적 조건이나 삶의 내력이 아닌 사람의 존재 자체에 초집중하고, ‘내 감정’을 묻는 질문과 지지를 통해 존재의 핵심을 정확하게 자극하는 ‘심리적 CPR’을 공감과 경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입니다.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입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라도 서로의 개별성까지 닿지 않으면서 함께 산다면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기능적 관계이기 쉽습니다.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관계라면 부부보다는 조직원이나 동료에 가까운 관계입니다. 사랑해서 만났어도 서로의 개별성에 다다르는 과정을 생략하다 보면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관계에 머물게 됩니다.

역할에 충실한 관계란 ‘모름지기 주부란, 아내란, 엄마란, 며느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모름지기 가장이란, 아빠란, 아들이란, 사위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충실한 삶입니다. 역할 놀이 중인 삶입니다. 이런 삶, 이런 관계 속에서 상대가 누군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내 심리적 S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면서 한 번도 그의 속살을 본 적이 없는 삶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그가 누구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삶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공감을 통해 자신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누구라도 짓눌려 있던 ‘내’가 되살아나고 자신의 상황과 문제를 스스로 조망할 수 있는 힘과 호흡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문가에게 내 마음을 외주 주지 않고도 응급 상황에서 벗어나고, 결정적인 순간에 주변의 가까운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북모닝 12월 도서 <당신이 옳다>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만나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든든한 집밥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옳다
정혜신 | 해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