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 딜리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죽이고 죽여도 죽지 않고 남는 것, 깎고 깎여도 깎이지 않고 남는 것, 제거하고 제거해도 제거되지 않고 남는 것, 시공을 초월하고 변하지 않는 것, 에센스, 본질…. 때는 1999년, 모든 언론이 천문학적 제작비를 들여 지구촌을 연결하는 휘황찬란한 디지털 판타지로 달려가는 사이, <딜리트>의 저자 EBS 김유열 PD는 인류의 프로토콜에 승부를 걸기로 했습니다. 21세기를 ‘무위無爲’라는, 즉 과거 2000년간 지속되어온 키워드로 맞이한 것이죠. 그는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를 기획합니다. 고작 편당 320만 원의 제작비로 인류의 원형질에 잠재된 불멸의 DNA를 깨웠습니다. 허虛와 무無의 철학, 즉 비움과 부정의 철학에 21세기 시민들이 열광했고, 맨 얼굴의 철학이, 가식과 허위를 부정하는 진정성의 철학이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21세기는 현상, 채움, 욕망, 유위有爲의 세기입니다. 그러나 시민의 열광 속에서 그는 다른 불꽃을 발견했습니다. 반노자적 시대에 노자 기획이 먹혔다는 것은, 사람들이 말초만 추구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 순수, 비움을 갈망했습니다. ‘노자와 21세기’가 초대박이 난 직후 EBS는 2000년 6월 ‘한국교육방송공사’로 거듭났고, 그해 7월, 그는 예고도 없이 평PD에서 공사 첫 편성기획부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당시 EBS는 시청률이 극히 낮았지만 편성전략을 최대한 단순하게 정했습니다. “잘할 수 없는 것은 비우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노자와 21세기’에서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어린이와 다큐로 ‘선택과 집중’ 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엄청난 반발 속에서 기존 프로그램의 70%를 폐지했습니다. 잘할 수 있고 정체성에 맞는 프로그램만 남기고 모두 폐지한 것이죠. 유니크한 편성체제를 가져야 초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굴 2011년부터 EBS는 우리나라 최고의 어린이 채널이 되었고, 전체의 시청률도 300%나 올랐습니다. 그 후 성인 시간대 역시 대부분을 다큐로 채우며 편성개혁을 주도했고, ‘다큐프라임’,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극한직업’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죠. 프라임 타임대 시청률이 매년 30%씩 고도성장했고, 최근 10년 사이에 600% 가까이 올랐습니다. 수상실적은 1,000% 이상 올랐죠. 그리고 그때 배운 노하우를 압축해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저자는 딜리트만 잘해도 누구나 창조자, 혁신가, 개척자, 개혁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창조하라! 혁신하라! 개척하라! 개혁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죠. 그러나 “딜리트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집니다.

 
 “○○○를 딜리트하면 새로운 △△△가 자동으로 창조된다.”는 방정식을 도출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입니다., 딜리느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유有를 무無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창조의 기술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창조자로 만들어줍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제안하는 ‘딜리트 매트릭스’가 나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업무에서 무엇이든 딜리트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없앨지 생각해보세요. 경계, 영역, 기능, 용도, 분야, 장르, 스타일, 재질, 모양, 컬러, 디자인, 사람, 시스템, 무엇이든 딜리트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