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왜 그들은 마지막에 마음을 선택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삶을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마흔에 이른 정약용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추락했을 때, 그는 반생 가까이 보낸 삶이 혹시 헛돈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강진에 유배 온 다음 어지러운 마음이 자신을 집어삼키려 할 때, 정약용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오직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오랜 시간 학문에 매진한 끝에 마지막 숙제와 마주합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 지적 거인들이 마지막에 도달한 책, 《심경》
처음과 마지막은 이야기가 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의 깊은 사유에 침잠하는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바로 그 이유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누군가의 이야기야말로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고자 합니다. ‘다산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방대한 학문체계를 쌓은 정약용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무엇일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퇴계 이황과 북벌을 주창했던 효종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과 같습니다. 바로 《심경心經》입니다.
‘심경’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퍽 낯섭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심경》을 주문하면 《반야심경》이 배송되어 난감해 했었다는 웃픈 에피소드도 전해질 정도입니다.
《심경》은 이름 그대로 ‘마음’에 대해 다룬 고전입니다. 편찬자는 중국 송 시대 학자인 진덕수로, 동양 고전들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구절들을 엄선해 엮은 다음 간단한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퇴계는 서른 무렵 이 책을 접한 다음 마지막 순간까지 매일 새벽마다 읽었다고 합니다. 정조는 경연에서 즐겨 이 책을 꺼냈으며, 효종은 자신의 관 속에 이 책을 넣어달라고까지 했습니다. 정약용 또한 자신의 공부를 정리하며 《심경》을 인생의 마지막 책으로 여겼습니다. 조선은 책이 지배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조선의 책을 단 한 권으로 요약하자면 《심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이러한 《심경》을 바탕으로 삼아 고전연구가 조윤제가 고전들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준 깊은 통찰을 소개합니다. 이를 위해 진덕수가 선별한 마음과 관련된 명구 37가지에서 다시 핵심을 뽑아 지금의 감각에 맞도록 새롭게 씀으로써 독자들이 어려운 문장 앞에서 헤매지 않고 살아가며 놓친 마음을 쉽게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경전의 끝판왕’으로 불리지만 《다산의 마지막 공부》에서 풀어주는 《심경》의 핵심은 일찍이 학교에서 배웠던 바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모든 학자들이 도달한 마지막 경지의 핵심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어떤 말보다 심오하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즉 “마음은 내 것이지만 평생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인생의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는 자각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취하기 마련인 행동은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경》에서는 그러한 정리란 마음공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음이란 살아내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다툰 끝에 결국에는 화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심경》이 그랬듯이 고전 명구를 다루되 섣부른 조언보다는 내 마음이 지옥 같은 때 펼쳐 읽고 기댈 수 있는 위로가 되고자 했습니다.
 
+왜 우리는 마음을 잃어버렸을까?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책이라는데,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는데 왜 《심경》은 한국에서 완벽하게 잊힌 책이 되었을까요?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선비라면 마땅히 읽어야 했던 책이었는데, 짚어볼수록 도깨비에게라도 홀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러한 의문에 섣부르게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추정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근대 이후의 한국인들을 가리켜 이렇게 평했습니다. ‘백 년 남짓한 시간을 천 년과 같이 보낸 사람들.’ 이처럼 살아남기 위해 가쁘게 발버둥 쳤던 역사에서 우리는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며 당장의 현실을 넘기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 또한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하루하루가 벅찬 한국인들에게 마음을 돌아보며 수양하자는 권유는 짓궂은 농담이자 물정 모르는 사치였을 뿐일 테니까요.
 그렇게 많은 것을 잘라내면서 속도를 낸 결과, 지금 우리는 원하는 대부분을 얻게 되었지만 급하게 쌓아 올린 만큼 안에서는 다양한 결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분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당장 오늘 뉴스만 보더라도 무수하게 많은 결로 갈라져 서로를 헐뜯고, 스스로의 바닥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의 사건 사고들로 넘쳐납니다. 내면을 지키는 데 집착하는 만큼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음 따위는 버려버리라는 모순된 충고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지요.
 쉽게 분노하고 서둘러 냉소하는 지금 여기에서 《심경》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제부터 살기 위해서는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버렸던 마음을 늦게나마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늘 휘청거리니 그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