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는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로 잘 알려진 문유석 판사의 독서 에세이입니다. 소문난 다독가로 유명한 문유석 판사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 중독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고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 야한 장면을 찾아 읽다가 한국문학전집을 샅샅이 읽게 된 사연, 『유리가면』으로 순정만화 세계에 입문한 이야기, 고시생 시절 『슬램덩크』가 안겨준 뭉클함, 김용과 무라카미 하루키 전작을 탐독한 이유 등 책과 함께 가슴 설레고 즐거웠던 책 덕후 인생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유석 판사님은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딱딱하고 지루한 책은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렇게 읽고 싶은 것만 읽어온 편식 독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읽고 싶은 것만 읽어도 될까요?


문유석 판사는 필독도서 리스트가 주는 중압감에 주눅들 필요도, 남들은 다 읽는 듯한 어려운 책을 나만 안 읽은 것 같다는 이유로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그저 내가 즐겁고 만족스럽다면 그만이라면서요.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 나지도 않는다.” 『쾌락독서』를 읽다가 머릿속에 물음표가 적어도 열 개 정도는 생기는 부분입니다. 정말일까요? 엘리트 판사이기에 독서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문유석 판사는 언젠가 서울대 추천 고전 목록을 보다 기가 막힌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읽지 않을 것만 같고, 제목만 봐도 기가 질리는 그런 책들의 목록을 보며 이런 식의 도서 추천은 오히려 사람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합니다.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은 정말 이 책들을 다 읽었을까 하는 의구심만 들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문유석 판사는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책들을 읽었을까 돌이켜보니, 그런 거창한 목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렸을 적, 만화책과 무협소설, 할리퀸로맨스들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지금도 특히 만화책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아 꾸준히, 왕성하게 읽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책들은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 용에 불과했던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모두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책들이었고, 그 책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독서 근육을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읽기의 즐거움이 먼저라는 이야기이지요.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쉽고 재미있는 길을 따라가면 독서의 폭과 깊이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니, 책을 대할 때 ‘이 책은 또 언제 다 읽을까’ 하고 긴장부터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문유석 판사는 어른이 된 지금도 자신만의 책 고르는 방법인 ‘짜샤이 이론’에 따라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우선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중식당의 기본 밑반찬인 짜샤이가 맛있는 집은 음식도 맛있었다는 경험에 빗댄 방법으로, 처음 30페이지를 먼저 읽어보고 내 취향의 책이다 싶으면 끝까지 읽어나가는 책 읽기인데요. ‘내가 재미있고 내가 즐거우면 그것으로 족하기’에 가능한 개인주의자의 책 읽기 방법입니다.

또한 한가할 때 하는 것이 독서라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주어지면 리모컨을 손에 쥐고 뒹굴뒹굴 티브이를 시청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기사나 SNS 피드를 무의식적으로 훑는 게 요즘 우리의 일상입니다. 예능 프로는 대치동 일타 강사처럼 어디서 재미를 느껴야 하는지 자막으로 알려주고, 넷플릭스의 웰메이드 드라마는 눈과 귀를 호강하게 해줍니다. 쏟아지는 감각의 공세에서 벗어나기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싶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문유석 판사는 책 읽기는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책은 읽다가 멈출 수 있습니다. 음미하고 싶은 구절을 만났을 때, 이야기의 구조를 스스로 추리해보고 싶을 때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는 것.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란, 이러한 내밀하고 주체적인 심리 작용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사유를 만드는 화학 작용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