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른들의 스마트폰 문명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고들 합니다. 모든 것을 기록해주고 기억해주고 처리해주는 기계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친구 전화번호 하나도 제대로 외우지 못할만큼 머리가 나빠졌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확산된 온라인 게임은 청소년의 정신과 마음을 갉아먹는 ‘중독제’ 취급을 하고, 젊은 층이 열광하는 SNS는 ‘인생의 낭비’라며 인간관계의 손상과 시간 낭비를 걱정합니다. 지나친 스마트폰의 사용에 따른 부작용 관련 보도가 넘쳐나면서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문명의 확산을 막는 강력한 규제공화국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물론 부작용이 있는 건 틀림없는 팩트입니다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의 놀라운 혁신성입니다.
 



한번 차근차근 짚어보죠. 요즘 사람들이 잘 외우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암기력이 퇴화되고 뇌 활동이 한가해졌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독점해왔던 지식은 이제 필요한 순간 스마트폰이 실시간으로 제공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영상, 텍스트, 음악 등 모든 종류의 정보를 고려하면 우리의 뇌는 그 어느 때보다 박식하고 지혜롭습니다.

인간관계를 살펴볼까요? SNS와 매신저앱을 통해 우리는 기존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가볍고 얕은’ 관계라는 편견의 반대편에는 놀라운 혁신성이 숨어 있습니다. 간편해진 연락 수단으로 더 자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가족과 친구들 여럿이서 동시에 대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서로 얼굴을 보며 말이죠. 궁금한 분야에 관한 세계적 석학들의 전문 강의를 손쉽게 접하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학습합니다. 부작용의 편견 뒤에는 이렇게 놀라운 잠재력이 숨어 있습니다.

부작용도 있지만, 엄청난 혁신의 잠재력을 가진 양날의 검과 같은 스마트폰 문명.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한결같이 부작용만 생각해왔을까요? 어쩌다가 IT인프라는 세계 최고인 나라가 스마트폰 문명에 대한 규제 장벽까지 세계 최고인 나라가 되었을까요?


 



사실, 스마트폰 문명의 등장은 파괴적입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자신에게 익숙한 생태계에 커다란 위협을 주는 파괴적 변화를 막으려는 자기방어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부작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현재 자신들의 생태계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방어막을 구축한 것입니다.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스마트폰 문명에 부작용이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그렇게 기성세대는 끊임없이 신문명에 의한 부작용을 들춰내며 완벽한 규제만이 올바른 미래를 가져다줄 거라고 강요해왔습니다. 튼튼한 규제의 장벽을 쌓으면 모두 지켜낼 수 있을 거라 믿은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기존 문명의 보존에 열을 올리는 사이, 스마트폰 문명의 놀라운 혁신성을 이용해 신문명을 창조한 새로운 종족이 미국 대륙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년 만에 이 새로운 문명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인류 문명 교체를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종족이 바로 ‘포노 사피엔스Phono-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입니다.

이미 전 세계 36억 명의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즐기고 있고, 이로 인해 시장 생태계의 파괴적 혁신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기업은 물론이고 우버,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기존 산업의 구석구석을 모두 교체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도 알리바바, 텐센트, 디디추싱, 샤오미 같은 중국의 신 기업들이 파괴적 혁신을 선도하며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대륙과 문명의 차이가 생길 때 우리나라에는 항상 위기가 왔습니다. 200년 전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을 거부했던 조선은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반면 기꺼이 받아들였던 일본은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죠. 역사가 증명하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대륙의 신문명은 엄청난 힘으로 우리에게 진격해오고 있고 지금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 운명을 결정합니다. 이미 대륙에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이 거센 변화의 물결은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막아설 수밖에 없는 어른들의 절박한 불안함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혁신의 기회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들은 좌절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세대 간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이것이 인류 문명 교체기 앞에 선, 지금 우리 사회의 민낯입니다.



 


포노 사피엔스
최재붕 |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