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붉은 여왕처럼?

 우리 기업들이 창의적인 지식과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장에 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낮은 인건비와 기존 기술이 통용되는 시장에서 빠른 속도만 추구하는 몸에 밴 성공 방정식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시장의 빠른 추격자로서 우월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쌓인 복잡성이 그 원인이다. 우리 기업은 주어진 문제에서 남보다 빨리 정해진 답을 찾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 그 과정에서 더 나은 프로세스 효율성을 위해 또 다른 프로세스나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데 익숙해져 자신도 모르게 ‘다다익선More is better’의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히게 됐다. 즉, 시장에서의 경쟁 열위를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자원(시간, 인력, 기술 등)을 투입하여 극복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시장 선도자first mover로 살아남으려면 소위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창의성과 혁신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방향성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한다는 붉은 여왕의 조언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배 밑에 달라붙은 따개비처럼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몸속에 축적된 복잡성을 없애고, 그렇게 가벼워진 몸을 바탕으로 올바른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이야기되는 스마트 기술도 결국에는 그 길을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 목적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최고의 대기업들이 대량생산 체제하의 제조업에서 익힌 방식으로 스마트 시대의 방향과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몸부림쳤지만, 올바르지 못한 방향이 그 과정을 얼마나 지연시켰는지 우리는 똑똑히 봐왔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걸었던 과정과 유사한 흥미 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창의성 연구자인 조지 랜드George Land 교수는 미국항공우주국을 위해 1,600명의 어린이들과 28만 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창의성 연구를 진행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5세의 어린이들은 98퍼센트가 창의성이 있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10세에는 30퍼센트, 15세에는 12퍼센트, 그리고 성인에서는 2퍼센트만이 창의성이 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창의성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 조지 랜드 교수는 교육 과정을 통해 ‘창의적이지 않은 행동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지 랜드 교수의 창의성 연구 결과를 우리 사회와 기업에 적용해보면, 우리는 2, 3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정답을 빨리 찾아내는 데만 익숙해졌고 사고방식도 그것에 맞추어져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기존의 것에서 가장 적합한 답을 도출하는 수렴적 사고가 가장 좋은 사고방식이며,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다양한 관점들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빨리’를 위해 다다익선만을 추구한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렴적 사고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가 요구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창의적 사고 능력을 갖지 못한 것인데, 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우리 사회와 기업 내에 축적된 복잡성이다. 따라서 복잡성을 제거해야만 21세기에 요구되는 창의성과 혁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성에 빠지다 | 지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