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위기’란 말이 식상해질 만큼 우리나라의 제조업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던 한국 기업들은 추격하는(일부에서는 이미 추월한) 중국과 앞서가는 선진국의 틈바구니에서 힘을 잃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기업 10곳 중 3 곳은 벌어서 이자도 갚지 못할 만큼 채산성이 악화됐다. 여기에다 초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 고질적인 낮은 생산성 등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미래 전망마저 어둡게 한다.

돌파구는 없을까? IoT 기술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 과감한 규제철폐, 새로운 시장개척 같은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관심과 투자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위기들은 우리만 겪은 것은 아니다. 선진국과 그 나라 기업도 겪었던 문제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를 극복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최근 SK, CJ 등 국내 대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경영 전략이 있다. 바로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 전략이 그것이다.

CSV는 경영계의 구루로 통하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 대학 교수와 마크 크레이머 FSG 대표가 2010년 주장한 경영 전략이다. 환경오염, 빈부격차, 기후변화 등 사회 문제로 촉발된 불만과 규제를 기업의 자원과 능력을 활용해 해결하고 동시에 기업은 독점적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내용이 CSV의 핵심이다. 실제로 전통의 강자 GE(미국)부터 네슬레(스위스, 식품), 야라인터내셔널(네덜란드, 농업), 보다폰(영국, 핀테크) 등 국가, 업종, 규모, 업력이 제각각인 기업들이 CSV 전략을 도입해 새로운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한 가지 살펴보자. 보다폰은 영국의 대표적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업이다. 이 회사는 정체된 자국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아프리카. 동유럽 등 개발도상국에도 진입하려했다. 첫 진출국으로 케냐를 선택한 보다폰은 휴대폰을 활용해 ‘송금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서비스, ‘엠페사’를 도입한다.

당시 케냐는 넓은 국토에 비해 금융 인프라가 취약해 송금과 인출, 입금이 매우 어려웠다. 신용카드 같은 결제수단은 서민층에게 매우 요원했다. 이 때문에 경제활동이 심하게 위축되고 빈곤에서 벗어날 기회도 제약을 받고 있었다. 보다폰은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문자로 소액을 송금하는 기술’을 도입했는데, 이미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술발전으로 크게 고려되지 않은 방식이었다.

엠페사를 통해 케냐에서는 현금 없이도 결제가 가능해지고 멀리 떨어진 자녀에게 송금할 수 있게 됐다. 전국에 2만 개 넘게 분포한 작은 가게들도 엠페사 사업자로 등록하여, 엠페사 송금을 받은 뒤 일부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을 돌려주는 일종의 현금입출금기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돈의 거래가 늘고 경제 순환도 빨라졌다. 많은 케냐 국미들이 빈곤 탈출에 탄력을 받았다. 케냐의 15세 이상 인구 3000만 명 가운데 75퍼센트에 달하는 2262만 명이 이 서비스에 가입해 보다폰은 케냐 이동통신과 금융의 80퍼센트 이상을 점유한 절대 강자가 됐다.

보다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이집트, 가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국가는 물론 인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 여러 개발도상국에 엠페사를 앞세워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보다폰의 연결재무재표 기준 매출에서 엠페사와 관련된 매출이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사업이 됐다.

시대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챔피언을 탄생시켰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공고히 짜여 있던 사회 시스템과 시장에 균열이 발생하면 기회의 문이 열린다. 그 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

기후변화,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같은 환경문제부터 빈곤, 난민, 빈부격차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이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미세먼지 같은 환경 문제가 국가 시스템, 국제 관계, 기업경영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부각되고 있다.

CSV를 주창한 마크 크레이머 대표로부터 ‘CSV 전략의 선구자이자 리더’란 극찬을 받은 김태영 성균관대학교 교수와 도현명 임패트 대표는 자신들의 신간 《넥스트 챔피언》에서 사회 문제로 촉발된 사회 불만과 이로 인한 기업 규제를 기업들이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문제에서 사회적 가치를 찾아내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든다면, 경쟁자 없는 시장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규모가 작다고 해서, 기술이 없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쓰레기 문제에 주목한 국내의 소셜벤처 수퍼빈은 국내 쓰레기 재활용 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됐고, 만년 2위 기업이었던 파타고니아는 의류 재활용에 주목한 후 친환경 브랜드의 대명사로 통하며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업체로 거듭났다. 새로운 성장 동력에 목마른 이들이라면 CSV에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