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 심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일본 물건을 불매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반도체를 생산할 때 꼭 필요한 불화수소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말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는데요, 이로써 우리나라에서도 기초 화학물질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에 더욱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물질 하나는 한 나라의 경제를 좌우할 수도, 더 나아가 세계사를 바꾸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어떤 시대를 풍미한 신소재가 실제로 역사를 뒤흔들기도 했는데요.

일본의 저명한 과학 칼럼니스트인 사토 겐타로는 책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에서 대표적인 신소재로 12개를 뽑아 설명했습니다. 금, 도자기, 콜라겐, 철, 종이, 탄산칼슘, 비단, 고무, 자석, 알루미늄, 플라스틱, 실리콘이 그것입니다.


 

 

몇 가지는 예상한 물질일 수도 있고, 또 몇 가지는 예상치 못한 물질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세계사를 움직인 물질에는 철이나 플라스틱처럼 싼값에 대량 생산 또는 추출되어 모든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 물질이 있는가 하면 금, 비단처럼 희소성으로 분쟁의 대상이 되어 세상을 바꾼 물질도 있습니다. 또한 고무나 실리콘처럼 그 자체로는 별다른 기능이 없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성능이 개선되고 형태가 달라지면서 인간의 활동 반경을 넓힌 물질도 있죠.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금은 특유의 반짝임으로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을 유혹해왔습니다. 3,000년 전 이집트 시대의 파라오인 투탕카멘은 황금 마스크를 만들기도 했고, 스페인의 피사로 역시 금을 목적으로 잉카제국을 정복했습니다. 금을 발명하기 위한 연금술은 화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죠. 최근에는 금의 전도성을 이용해 최첨단 기기의 부품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의외의 물질로는 탄산칼슘도 있습니다. 탄산칼슘은 분필, 치약, 지우개 같은 생필품부터 이스트, 햄, 과자 같은 식품, 시멘트와 대리석 같은 건축재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얼굴을 바꾸는 재료계의 배우입니다. 그렇게 보면 영국의 우주생물학자 루이스 다트넬이 본인의 책에서 인류가 종말을 맞이했을 때 문명을 재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채굴해야 할 재료로 탄산칼슘을 꼽은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로마는 탄산칼슘 덕분에 도로를 정비해 세계 정복의 발판을 놓았고, 진주를 녹여 삼킨 클레오파트라의 기지에 놀란 안토니우스는 그녀에게 매혹되어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조금 더 현대로 와볼까요? 알루미늄은 가볍고 녹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 금속이었으나 오래도록 실용화되지 못했습니다. 알루미늄은 자연계에 산소와 결합된 산화물 형태로 있기 때문에 산소와 분리시켜 사용해야 했으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이 문제는 한 대학교수가 흘린 농담 한마디로 풀렸습니다. 학생들에게 알루미늄 제련에 성공하면 갑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덕분에 찰스 마틴 홀이라는 학생이 실험 끝에 알루미늄 제련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후 항공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알루미늄 제련법이 인간의 공간을 하늘로 넓혀준 셈이죠.


 



이처럼 재료는 만물의 기초가 됩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군사와 문화, 세상의 온갖 일들이 재료 위에 세워집니다.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화학, 고체물리학, 물성물리학, 야금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재료과학’material science라는 영역을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미국의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재료과학은 오늘날에도 가장 중요한 학문 중 하나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이 영역에 계속해서 거액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최근 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4년제 대학 중 절반에 가까운 곳에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등 자연계열 기초 학과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핵심 소재 개발과 4차 산업혁명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기초 학문을 중점적으로 다뤄야 하지만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죠.

책의 저자는 말합니다. “힘 있는 국가와 조직이 새로운 재료를 만들고 그 재료가 다시 국가와 조직의 힘이 된다.”고 말이죠. 앞으로 신소재의 중요성은 더욱 더 높아질 전망입니다. 국가와 기업에서 신소재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앞으로 급성장하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요?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사토 겐타로 | 북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