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시간을 내어 이 질문에 답해 봅시다.
-내 아이를 성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일까?
-우리는 은퇴를 위해 얼마나 저축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이민자 비율은 어떻게 될까?
-전 세계 테러는 늘어나고 있을까, 줄어들고 있을까?
 
학력이 어떻건, 직업이 무엇이건, 부자건 아니건 간에, 우리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질문에서 틀린 대답을 내놓을 것입니다. 인터넷과 미디어에서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더욱 정밀하고 광범위한 팩트체크가 가능한 시대, 왜 우리는 자꾸 팩트에서 멀어져갈까요?

《팩트의 감각》(원제: The Perils of Perception)은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가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와 함께 2018년 최고의 책으로 꼽은 책입니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 (Ipsos MORI) 의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바비 더피는 《팩트의 감각》에서 지난 20년간 전세계 40개국, 1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백 가지 설문을 토대로 건강과 돈 관리 문제부터 사회의 안전과 이민자 등에 대한 인식까지 우리의 ‘팩트’를 점검하고 잘못된 인식을 쇄신할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바비 더피는 말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무지하지 않다. 그보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무지는 말 그대로 ‘알지 못함’ 또는 ‘익히지 못함’을 뜻한다. 하지만 잘못된 인식은 현실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그는 “잘못된 인식이 무지와 다른 점은, 사람들이 굳은 확신을 품고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며,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단순히 ‘팩트’를 내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대신 그는 여론조사, 미디어, 의사결정, 감정추론 등 영역의 최근 연구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떻게 잘못 알고 있으며, 제대로 알 수 있는가에 대해 정밀하게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접근해갑니다.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까요?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 거라고 대답했다. 물론 틀린 대답이다. 우주에서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는다. 만리장성은 가장 두터운 지점이라고 해봐야 9미터로, 작은 집 한 채 정도의 두께다. 누구든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데에도 그럴싸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건 당신이 깊이 생각해봤을 질문이 아니다. 둘째, 당신이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인쇄물이나 텔레비전에서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언뜻 들었을 수 있습니다. 셋째, 당신은 뒷부분을 빨리 읽고 싶어서 분명 곧장 질문에 답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감정과 믿음에 의해 이끌리는 편입니다.

《팩트의 감각》 저자 바비 더피는 수많은 온라인 정보와 팩트체크가 가득한 지금을, 역설적이게도 그 어디 시기보다 "착각과 오해의 가능성이 가장 많은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은 현상을 보이는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 하는 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실제 수치와 동떨어지게 더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는 《팩트의 감각》에서 대표적인 설문문항인 이민자 수, 10대 임신율, 범죄율, 비만율, 세계적인 빈곤 문제의 동향, 페이스북 이용자 수 등에 대한 여론과 통계 사례를 소개, 분석하면서 실제 통계와 사람들의 믿음 사이 커다란 간극을 보여줍니다.
 
바비 더피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편견은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들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인지편향과 외부 자극으로부터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그는 우리의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로 우리의 사고방식, 우리가 듣는 이야기 두 가지를 꼽습니다.

먼저 우리는 실업률이나 10대 출산율, 은퇴자금이나 범죄율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팩트에 신중하게 접근하기보단 공포에 질리거나 표면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기존 견해, 다시 말해 편향에 의존하는 사고 경로를 가진 탓에 편견과 선입견에 갇혀서 사고하기 쉽기 때문이죠.

한편으로 우리가 언론과 소셜미디어, 그리고 정치인들과 기업들을 통해 듣고 판단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단지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트럼프의 사례나 브렉시트의 경우처럼 가짜 뉴스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퍼트리는 알고리즘, 미디어, 기업, 정보기술, 윤리적 기준 등, 전반적 시스템을 문제시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죠.
 
바비 더피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팩트 감각을 살려주는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는 책 전반에서 다룬 사례들을 종합해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한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에 대한 환상을 깨고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이야기해주는데요. 미디어에 속지 말고, 감정으로는 받아들이되 판단의 순간에는 신중하게 통제할 것, 냉소주의가 아니라 회의주의를 기를 것, 극단적 사례에 휘둘리지 말 것, 필터 밖 세상을 바라볼 것 등. 개인의 사고방식과 관련된 방법에서 시작해 사회적 차원에서 취해야 할 조치까지 다양한 방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짜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더 똑똑하고 사실에 입각한 견해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봤으면 하는 책입니다.



 
 
팩트의 감각
바비 더피 | 어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