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10년간 장기호황이라고는 해도 역대 호황 국면에 비하면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낮았습니다. 하지만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세계 부동산 가격과 미국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자산 가격만은 그 어떤 호황 시기 못지않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성장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자산 가격만 치솟아 오르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경제학자들과 세계적인 투자자들, 그리고 투자은행들이 이제 곧 미국 경제의 호황이 끝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경기 침체나 금융위기까지 겪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놓으면서 2020년을 ‘위기의 해’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위기가 오기 전에는 미리 수많은 불길한 전망이나 전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전조가 처음 나타나면 당장이라도 위기가 시작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전조가 계속 거듭되면 결국 만연한 위기론에 지쳐 점점 이를 무시합니다. 그 결과 정작 위기가 눈앞에 닥쳤을 때 아무런 대비 없이 위기를 맞아 큰 손실을 입고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에도 크고 작은 금융 불안과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러 차례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금융 불안이나 경고가 매번 큰 위기 없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에 점점 더 둔감해졌습니다. 그 결과 금융위기를 알리는 중요한 시그널이 곳곳에서 등장했지만, 대부분의 경제 주체들이 이를 무가치한 소음으로 치부하고 무시했다가 그만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처음 위기의 시그널이 등장했을 때 너무 성급하게 위기를 속단해서도 안 되지만, 거꾸로 너무 많은 시그널에 지쳐 이를 무시하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큰 지진이 나기 전에는 크고 작은 전진(前震)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만일 전진이 잦아진다면 이에 경각심을 갖고, 뒤이어 닥칠 본진(本震)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위기의 해로 지목한 경제학자나 투자전문가들의 예상대로 2020년에 정말 경제 위기나 경기 불황이 시작된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요? 너무 성급한 판단은 아닐까요?
 
시장의 아주 작은 변화가 경제 주체들 사이의 수많은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박종훈 기자가 연구해온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한계는 ‘2020년 위기론’에서도 나타납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수의 경제 전문가들과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이 2020년을 위기의 해로 지목했지만,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의 예측이라 해도 2020년 위기설을 확신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지금 세계 경제 상황이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임계 상태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제 위기설 자체가 새로운 상호작용을 일으켜 경제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 위기론이 대중에게 확산되면 그 자체가 가계나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소비활동이나 투자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정부가 직접 개입할 경우, 그 결과는 더욱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경제 위기설이 대중에게 파급되면서 2018년 말에 미국 주가가 폭락하고 다양한 불황의 시그널이 나타나자, 2019년 1월 미국 연준은 금리 인상에 대한 눈높이를 대폭 낮추고, 심지어 경기 둔화가 시작되면 다시 양적완화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해 시장을 안심시켰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2011년에도 일어났습니다. 당시에도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유럽 경제가 다시 불황의 늪에 빠지는 더블딥 우려가 커지자, 유럽 은행은 전대미문의 마이너스 금리와 대대적인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더블딥의 위기를 비교적 쉽게 넘어갔습니다.

2015년 말에는 중국발 경제 위기설이 나오면서 상하이 주가가 폭락하고 위안화 가치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공매도의 황제 조지 소로스가 위안화 가치 폭락에 베팅했다는 소문까지 퍼졌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에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는 위기를 빗겨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위기론 자체가 금융당국의 대응에 영향을 주고 경제 주체들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일으켜 경제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과거에 뛰어난 예측력을 보였던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위기설을 내놓더라도 이를 100%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를 낼수록 경제 주체들이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에 정말 경제위기가 올까요? 경제전문기자 박종훈의 냉철한 분석과 통찰이 담긴『2020 부의 지각변동』이 2020 경제위기설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독자들에게, 2020 투자계획을 세우려는 독자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0 부의 지각변동
박종훈 |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