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핑크의 말마따나 모든 사람은 저마다 무언가를 판다. 우리네 세상살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정책과 비전을 국민에게 판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팔고, 작가는 소설을 판다. 취업 준비생은 기업의 채용자에게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판다. 심지어 나는 여덟 살짜리 아들에게도 판다. 오늘 아침에는 ‘맛은 없지만 몸에 좋은’ 야채 주스를 섭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팔았다. 이 주스를 마셔야 키가 커지고, 친구들 사이에서 힘도 제일 세질 거라는 매혹적인 포장을 더해서.

당신은 오늘 무엇을 팔았는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우울한 소식을 전한다. 지금은 무언가를 팔기에 녹록한 환경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사상 가장 팔기가 힘든 시기다. 신제품을 출시하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시대가 있었다. 수요가 공급을 앞섰다. 판매자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 반대다. 포화의 시대다. 마트에 가서 맥주 하나를 사려고 해도 선택지가 수백 개에 이른다. 라거 맥주, 흑맥주, 에일 맥주, 발포주, 저칼로리 맥주, 독일 맥주, 프리미엄 맥주…. 이런 마당이니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소비자들의 눈길조차 사로잡기 힘들다. 제품뿐만이 아니다. 브랜드도, 광고도 너무 많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접하는 광고가 3,000개에 이른다는 무시무시한 통계도 있다. 그중에 기억되는 광고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건 또 하나의 비극이다(나 같은광고인에게는 더더욱 최악의 시기다).

사람도 포화다. 정치인, 변호사, 의사, 아이돌그룹 할 것 없이 너무 많다. 하루가 멀다고 경쟁해야 할 상대가 쏟아져 나온다. 몇 년 전, 11명의 아이돌그룹 멤버를 뽑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101명의 미소녀가 떼 지어 나와 ‘Pick me’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픽(pick)되어야 한다. 선택받기 위해 박 터지게 경쟁한다. 결국, 포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내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어떻게 해야 잘 팔 수 있을까.”


 


브랜드가 팔린다

‘오리지널 이케아 프락타 백을 식별하는 법’
2017년,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낸 광고 카피였다. 그 밑으로 이케아의 장바구니 프락타 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0.99센트에 불과한 이케아의 장바구니를 구분하는 방법이라고? 아니, 이 저렴한 가방을 누가 카피라도 했단 말인가? 답은 ‘그렇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짝퉁 프락타 백을 만든 브랜드가 요즘 가장 핫하다는 발렌시아가였다는 것.

발렌시아가의 캐리 쇼퍼백이 문제의 가방이었다. 2017년 발렌시아가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서 공개되자마자 프락타 백을 카피했다는 소문이 났다. 사이즈와 컬러, 형태까지 모두 동일했다. 가방의 소재만 폴리프로필렌에서 양가죽과 소가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프락타 백의 가격까지 베끼지 않은 건 함정. 캐리 쇼퍼백에는 2,150달러의 가격표가 붙었다. ‘가성비 갑’ 이케아의 장바구니가 2,000배 비싼 명품으로 재탄생한 기적! 캐리 쇼퍼백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캐리 쇼퍼백은 발렌시아가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의 ‘의도된’ 작품이었다. 그는 대놓고 베끼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그가 만드는 모든 옷은 이미 있는 아이템을 바탕으로 한다. 현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을 가져다 살짝 비틀어서 반쯤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태국의 야시장에서 판매되는 비닐 가방을 모티브로 바자 백 시리즈를 출시하고, 뉴욕의 기념품 가게에서 흔히 판매하는 20달러짜리 가방에 ‘멀티 컬러 뉴욕 바자 쇼퍼 토트백’이라고 이름 붙여서 파는 식이다. 발렌시아가 로고를 얹어서 가격을 수백 배 이상 올려 받았음은 물론이다.

결국, 사람들이 구매한 것은 캐리 쇼퍼백이라는 제품 자체가 아니었다. 발렌시아가라는 브랜드였다. 발렌시아가의 로고였다. 발렌시아가의 역사, 브랜드 스토리, 신성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의 명성이었다. 캐리 쇼퍼백의 가격은 곧 발렌시아가의 브랜드 값이었다. 기능이 2,000배 더 좋아졌다거나 2,000배 더 좋은 재료를 썼기 때문에 비쌌던 게 아니다. 이것이 브랜드의 힘이다. 발렌시아가가 카피를 하든, 그로 인해 고소를 당하든 사람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도 기꺼이 지불한다. 발렌시아가니까.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라는 앤디 워홀의 유명한 말은 발렌시아가에도 적용된다. 일단 브랜드가 되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

이처럼, 요즈음 사람들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 브랜드를 산다. 오직 브랜드만이 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