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쓸데없는 말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방송마다 똑같은 뉴스를 반복하고, 스마트폰은 쉬지 않고 울려댑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동료들마저 쉬지 않고 떠드는데, 그걸로도 부족한지 정치가와 기자들까지 나서서 눈사태처럼 말을 쏟아내죠. 우리는 이런 말의 홍수에서 살고 있습니다. “잘 알면 세 마디로 족하다. 잘 모르니 서른 마디가 필요한 법이다.”라는 말이 있죠. 말을 많이 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결론을 말하자면, 침묵의 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침묵도 소통의 방식입니다. 말과 침묵은 서로를 보완합니다. 그래서 말과 침묵의 균형이 중요하죠. 침묵은 효과가 강렬해서, 말이 적으면 지적인 인상을 풍기고 속이 깊어 보이게도 합니다. 깊이 있는 인간의 아우라가 바로 침묵의 결과인 셈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상사와 단둘이 있는 장면,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미팅 직전의 서먹한 분위기……. 이런 난감한 순간은 끝도 없이 많습니다. 오로지 어색한 침묵을 피하기 위해 주섬주섬 말을 늘어놓는 상황들. 이런 상황에서 말은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그저 고문 같은 정적을 깨뜨리기 위한 소음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내용 없는 말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와의 관계는 어색한 침묵을 억지로 깨려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될 때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조금의 침묵도 불편해하며 습관처럼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행동 때문에 가족과 동료, 부하직원, 고객, 상사에게 기피 대상 1호가 되기도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말을 적게 하면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꾸로 합니다. 욕망이 강할수록, 시간이 촉박할수록, 마음이 불안할수록 말을 더 많이 합니다. 이들은 봄에 사과나무 한 그루에 5톤의 비료를 들이붓고는 ‘비료를 많이 줬으니 사과가 빨리 열리겠지?’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알다시피, 그렇게 비료를 퍼부으면 그 사과나무는 여름이 오기도 전에 죽어버릴 것입니다. 사과를 얻고 싶다면 ‘적정한 양’의 비료를 주어야 합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