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한 국가의 시민 모두에게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 일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는 과정 자체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디딤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맥락을 살필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인들이 현대사의 전개 과정까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500년 동안 왕조를 유지했던 조선사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조선의 500년 역사를 관통하는 중심 소재들은 문화 콘텐츠가 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 평범한 독자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조선사는 용어 암기에 치중하다보니 머릿속에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책 『조선회화실록』은 조선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냅니다. 저자는 미술사학자로서 조선을 식민지이기 전의 답답하고 무능한 시대가 아닌, 조선만의 동역학을 실록과 대조하며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왕이 살았던 시대에 그려진 그림과 실록을 오가며 왕권과 신권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손에 잡힐 듯이 풀어냅니다.

또한 조선 회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왕들의 <어진>(초상화), 조선 사대부들의 모임을 담은 다양한 <계회도>, 경술국치 이후, 마지막으로 경복궁의 풍경을 담은 <백악춘효도>에 담긴 맥락을 살피며 독자들에게 사관과 화가의 붓이 만나는 지점에 어떤 역사의 변곡점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조선의 회화는 조선이 담고자 하는 이상과 현실을 핍진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됩니다. 전란이 일어났을 때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로는 백성을 위해 더 많은 정책을 펴고자 하는 의지로서 말입니다. 실록과 함께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그림들이 어우러진 이 책은 독자들에게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스웨덴의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는 역사에 대해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 역사를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냉철한 눈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사, 그중에서도 조선사는 편견과 이념을 넘어 객관적 정보와 사실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책 『조선회화실록』은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한일관계를 비롯해 동아시아의 팽팽한 긴장이 과거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나와 사회, 더 큰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 그림1: 신숙주 초상, 그림2: 미원계회도

 


조선회화실록
이종수 | 생각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