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들어오면 도시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 대부분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도시는 여전히 낯선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고, 일하는 터전인데도 괜히 어렵게 느껴지고 내 삶과 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죠. 사람들이 평소 도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를 꼽자면 아마 다음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첫째, 내 이야기가 아니다. 둘째, 도시를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다. 셋째,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모두 잘못된 전제라고 말합니다. 첫째, 도시는 도시에 살고 있는 누구에게나 ‘나의 이야기’입니다. 살며, 다니며, 먹고, 사고, 길을 잃고 또 찾으며 매일매일 도시를 겪는다는 점에서 그러하죠. 누구나 도시에 대해서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누구나 도시를 만드는 데 크고 작은 역할을 합니다. 시장이나 공무원, 도시계획가나 건축가가 아니어도 말이죠. 우리가 어떤 동네에 집을 마련하고, 어디에서 물건을 사고, 어떤 길로 다니며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가 모두 도시를 운영하고 설계하는 빅데이터로 활용됩니다. 또한 ‘투표’라는 핵심적인 참여 방식도 있죠. 도시를 만드는 결정적 의사결정권자들을 선택하는 일은 시민으로서 자기가 사는 도시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자 최대한의 권리입니다. 우리 모두 핵심적인 플레이어라는 말이죠. 셋째, 복잡하고 어렵다고 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말이 꼭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사안인 재개발과 재건축, 도로 개설과 지하철 개통은 화젯거리가 되고는 하잖아요. 그러니 도시의 삶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더 알고자 하기만 한다면 재미를 붙이고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는 도시를 이야기로 접근하길 권합니다. 그리고 도시를 읽는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를 제시하죠.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대비로 통찰,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현상과 구조,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저자는 도시에 대해 가지는 은근한 불쾌감과 거부감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 핵심은 도시적 삶의 근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익명성이죠. 도시란 본질적으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도시의 모습을 피상적으로 본 것에 불과하며 익명성 속에서 오히려 도시의 무한한 자유가 커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긍정적 측면을 누리기 위해서 신분으로 서로를 규정하지 않을 것,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을 것,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 ‘친밀의 거리’에 대해서 공감할 것, 언제든 다가가고 언제든 멀어질 수 있음을 인정할 것, 질척이지 않으면서도 체온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길 것 등의 조건을 내세우죠. 부족 사회나 신분제 사회와는 달리, 도시적 삶에서는 서로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정의롭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덜 다치고 덜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지혜들이 모여 사회의 불안감을 줄이는 좋은 문화나 양식이 되기도 하고요.

 이처럼 저자는 시민들이 도시적 콘셉트에 익숙해지면 현상 뒤에 있는 구조를 읽는 시각이 생기고, 현상의 현란한 자태에 덜 속게 되며,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바람을 키우고, 그 바람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더 잘 가다듬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이 책을 썼습니다. 시민들이 자신과 도시의 관계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로 일하고 거닐고 노니는 우리 공간에서 도시적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