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탈물질주의를 이뤄낼 주인공은 창의적 경계인들이다
 
 초단기 압축성장 이후 다가온 수축사회 시기에 다음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밀레니얼 개척자들, 창의적 경계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1부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이런 변화의 큰 흐름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1부 1장에서 살펴본 트레바리의 윤수영 대표는 독서 커뮤니티 서비스로 세상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가 사업 아이디어를 말했을 때 주변에서는 ‘적지 않은 돈까지 내가면서 누가 독서 커뮤니티에 가입하겠는가’라며 회의적이었다. 더구나 요즘 2030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2019년 8월 기준으로 유료회원이 5,600명에 달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그가 지향하는 가치에 많은 사람이 동참한 것이다. 트레바리의 슬로건은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더 나은 우리를 위한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다. 처음에는 청년들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점차 전문 영역의 경험을 가진 시니어들과 청년들 사이의 지적인 커뮤니티로 확장됐다. 이렇게 창의적 경계인들은 기성세대를 배척하지 않고, 기성세대 중에서도 창의적 경계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세대 간 연결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1부 2장에서 소개한 충주시청 조남식 주무관은 8급 지방공무원이었지만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충주시 홍보 페이지를 B급 감성으로 운영하면서 4만 명이 넘는 구독자 팬덤을 만들어냈다. 과장, 팀장은 처음엔 우려했지만 조 주무관의 지지자가 됐다. 2대 담당자 김선태 주무관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역할을 확장해서 3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그들은 전국 지방정부에 초청받아 강의를 다니면서 가장 위계적이고 재미없던 공공 조직을 변화시키고 있다.
1부 4장에서 살펴본 해녀의부엌 김하원 대표는 해녀의 딸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제주도 돌아와 해녀 콘텐츠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지방 도시는 척박하고 떠나야 할 곳이지만,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차별화된 콘텐츠의 보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제주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해녀 ‘삼춘’들(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친척을 삼춘이라 부른다)과 할망들에게 연기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들의 삶을 담은 공연을 하면서 그들이 채취한 자연산 수산물을 다이닝하는 서비스도 만들었다.
이렇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창의적 경계인들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민간과 공공을 연결하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면서 변화를 만들어간다. 이들의 활동으로 기성세대도 변화하고, 공공도 변화하고, 지역도 변화한다. 이들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함께 나눌 친구들을 찾고, 일하고 살기에 더 좋은 지역을 만들어간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 전환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모두가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0년대 서구의 반문화운동이 일어나던 때는 매스미디어의 시대였다. 히피들은 전 국민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킬 만한 기이한 집단행동과 공동체생활을 통해 TV와 신문에 보도되기를 의도했다. 그 결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궁금증이 생긴 많은 이들이 캘리포니아로 모여들면서 점점 더 큰 사회현상이 되어갔다. 그들은 라디오와 록 음악을 통해 저항의 정신을 노래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과 모바일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시대다.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고, 경계 없는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다. 또한 결이 맞는 커뮤니티에 참여할 사람들을 쉽게 모을 수 있다.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디지털 기술과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 미디어 문해력(media literacy-미디어를 읽고 쓰는 능력)은 누구나 콘텐츠와 커뮤니티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한다.


 대한민국을 탈물질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밀레니얼 개척자들은 이처럼 강력한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 도구들을 활용해서 다양한 세대와 국가, 도시를 넘나들며 가치 중심의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서구 히피의 반문화운동처럼 집단적 일탈 행동을 함으로써 세상을 뒤엎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연결을 통해 함께 변화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청년 인구수의 부족은 결코 불리한 점이 아니다. 전 세계가 비슷하게 수축사회로 향하고 있는 이 시기에 대한민국의 창의적 경계인들이 효과적으로 시대 전환을 이루어낸다면, 새롭게 전개되는 시대에 전 세계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고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